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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트라우마)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사이에 화제가 되는 드라마가 있었다. 그간 외과나 내과 의사를 주인공으로 다룬 드라마는 많이 있었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는 없었기 때문이다. 정신건강의학과는 외과나 내과처럼 극적인 순간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생각 외로 자신의 환자의 자살이라는 비보를 종종 듣게 되며 절박하고 극적인 인생의 많은 단면을 보게 된다.
세상이 점점 각박하고 경쟁적으로 흐르다 보니 삶이 공허하고 외로운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특히 어린 시절 엄청난 고통이나 학대와 같은 트라우마를 경험하여 현재에도 악몽 속에 사시는 분이나 어린 시절 유복하게 보냈더라도 성인기를 맞아 새로운 고통 속에 신음하는 분들 또한 만나게 된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대상으로 한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비단 드라마에서 흔히 접하기 어려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때문만은 아닐 것이고 환자들의 삶을 통해 우리네 인생의 다양한 측면을 볼 수 있어서 일 것이다.

의사이면서 동시에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는 평생에 걸쳐 우리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어린 시절의 경험이라고 생각하였다. 이 때의 경험이 전 일생에 걸쳐 지속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린 시절에 학대와 같은 트라우마를 만난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우울증, 조울병, 불안 장애, 조현병 등과 같은 정신 질환에 시달릴 수 있다고 보았다. 필자 또한 우울증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어린 시절 지속적으로 신체적 학대, 정서적 학대, 성적 학대 등의 트라우마를 경험한 환자들은 그렇지 않았던 환자들보다 자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실제 자살 시도의 경험도 많으며 충동적인 성향과 심한 기분의 변화를 가지고 있음를 확인하였다.

또한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경험한 우울증 환자들은 우울증 정도가 심할수록 세로토닌 부족 현상이 더 심해짐도 확인하였다. 이는 트라우마가 뇌의 이상을 일으켜 기분을 조절하는 세로토닌 분비 체계에 고장을 일으켰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우리 나라와 같이 노동 시간, 음주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며, 경쟁적이고 각박하고 늘
빨리, 빨리를 외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학원에서 보내며 세계에서 가장 적은 시간 잠을 자는, 트라우마 아닌 트라우마를 받는 우리의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세로토닌 부족으로 각종 정신 질환에 더 시달리지나 않을까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에 대한 폐해는 앞에서 언급한 드라마에서도 잘 나타난다.
폭력적인 아버지를 만나 그에게 받은 트라우마로 인해 주인공이 정신 질환을 앓게 된다. 어린 시절 지속적인 아버지의 폭력은 사랑해야 하는 아버지를 증오하도록 하는 양가적인 갈등과 혼돈 상태를 만들어 버린다. 이 때 우리의 뇌는 결정을 해야 한다. 모든 것을 억압하고 아버지에 대한 복종의 길을 가든지 아니면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철회하고 평생 권위에 대한 분노와 증오심으로 살아가던지
이도 저도 아니면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증오라는 극단적 양가 감정 속에 혼란된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 이렇듯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성인기까지 영향을 주고 정신 질환을 일으키기 까지 한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 똑같은 트라우마를 받더라도 어떤 사람은 잘 이겨내서 더 성숙한 사람이 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완전히 무너져서 심각한 정신 질환에 걸리기도 하는데 그것은 왜 그럴까?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할 수 있다. 첫번째는 유전적인 부분이다. 선천적으로 우울증과 같은 정신 질환에 취약한 분들이 있다. 두번째는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어린 시절 트라우마이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있으면 아무리 유전적인 부분이 문제가 없더라도 추후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 정신 질환을 앓게 될 수도 있다. 세번째는 회복탄력성 다른 말로 리질리언스이다. 이는 말 그대로 트라우마 혹은 스트레스를 받고 나서 원래 상태로 빨리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회복탄력성이 좋은 사람은 역경을 오히려 성숙해지는 계기로 삼는다. 회복탄력성 역시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후천적인 연습과 훈련을 통해서도 달라질 수가 있다. 이러한 연습 또는 훈련이 심리 치료 과정이 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심리 치료에는 정신분석, 인지행동치료 등 다양한 기법이 있다. 또한 회복탄력성은 약물 치료와 같은 생물학적인 치료로도 높일 수가 있다. 비록 요즘은 많이 달라지고 있지만 아직도 정신건강의학과의 약물 치료라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시선이 많다.
중독이 된다 바보가 된다 등등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정신건강의학과의 질환들은 마음의 병이 아니라 사실은 뇌의 병인 경우가 많다. 뇌 속의 도파민, 세로토닌, 아드레날린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이상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고장난 신경전달물질의 정상화를 이루려면 주변의 격려나 운동만 가지고는 어림없는 경우가 많다. 약물이 뇌로 들어가서 고장난 회로를 고쳐 주어 신경전달물질의 정상화를 이루어주어야 한다. 따라서 약물 치료에 대한 무조건적인 편견은 없어졌으면 좋겠다. 다만 약물 치료에 정신 치료를 보조하면 더 좋은 치료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우리 나라 자살률이 올해도 예외 없이 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라고 한다. 정말 너무나도 슬픈 현실이 아닐 수가 없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신건강의학과의 문턱을 낮추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으로 본다. 최근 들어 많이 달라지고는 있지만 사회적 편견으로 말미암아 여전히 정신건강의학과를 간다 하면 말리거나 정신과 약물을 먹지 말라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필자는 자살을 마음 먹고 있다가 반신반의하며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였다가 호전된 분들을 꽤나 많이 보게 된다. 그것은 그분들 주변의 상황이 좋아져서는 아닐 것이다.
상황은 변함이 없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통해 그 분 자신의 시선, 관점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의 변화는 뇌의 변화와 관계가 많고 이러한 뇌의 변화는 약물 치료 또는 심리 치료 혹은 둘의 혼합 치료가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정신 질환을 의지 문제 또는 마음의 문제로만 보면 안된다. 뇌의 문제로 보고 치료해야 한다. 이제 사회의 인식도 달라져야 할 것 같다. 괜찮아, 정신 치료라고…